송요찬 참군인의 아들 송민석 원장의 초대석
바비큐 파티 속에 새롭게 영그는 나눔의 장
▲우태하 은평지원에서 개최한 개원 6주년 바비큐파티에는 김청 씨의 마술 등으로 분위기를 애돌게 했다.
심상치 않은 기상변화속에서도 북한산 자락은 봄꽃으로 마음을 희롱한다.
평창동 가나아트 야외 홀에서 바라보는 봄의 향연은 거친 바람결에도 마음속 풀꽃을 야무지게 피어나게 한다.
오월의 첫날 토요일의 황혼녘.
엷은 구름 속에서도 처연하게 저무는 햇살은 초대받은 손님들에게도 자연의 신비로움을 온전하게 선사한다.
초창기 외국 미술품을 국내에 들여오면서 화랑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가나아트센터 3층에 위치한 카페 모뜨 야외테라스에는 바비큐와 붉은 와인, 생맥주와 양주 죠니워카로 봄추위를 녹여가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피부전문병원으로 유명한 우태하 은평지원(원장 송민석)에서 개원 6주년을 맞아 펼친 파티였다.
피부과 직원들과 인기높은 손님들을 초대한 자리였다.
그곳에 피부관리는 전혀 안하는 내가 부부라는 구실로 참석했다.
냉냉하고 한 밤 홀로 혹은 두셋이서 깊게 술을 마시는 닥터들의 일상적 세계에서 가족들과 외부 손님을 함께 초대했다는 것부터 생경했기에 발길을 재촉했는지 모른다.
흰 가운을 입은 여인들만 보다가 봄옷으로 갈아 입은 여인들은 모두가 봄꽃이었고 향기 진동하는 싱싱한 꽃술들이었다.
더구나 산 언저리에 살아 움직이는 꽃들이라니, 그 아름다움이 오죽하랴.
단골손님이면서 마술학원을 운영하는 마술사 김청씨의 마술로 분위기를 잡고 본원의 대한피부과 회장인 한승경 원장의 축하, 그리고 송민석 원장의 직원소개와 인사말로 봄 날의 바비큐파티는 독특한 매력과 향내를 진하게 풍긴다.
우태하 피부과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과 그 정을 함께 나누자는 작은 베품의 자리여서 술맛이 더더욱 익어간다.
송민석 원장은 4.19혁명의 역사 속에서도 떳떳하게 자리매김하는 송요찬 장군의 아들.
여산 송씨로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송장군은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우리나라 국군 창설에 참여, 육군보병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으며 지리산공비소탕작전, 6.25당시는 헌병사령관, 54년 제3군단장, 57년 제1군사령관, 59년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정군 · 군인연금제도 신설 등 군 발전에 기여한 참군인의 영원한 장군.
4 · 19혁명 때는 계엄사령관으로서 중립을 지켜 절대절명의 시기에 한 나라를 온전하게 지킨 인물로 세월 속에서도 그 평가를 더욱 값지게 한다.
얼마 전 4 · 19혁명 특집시 성신여대 사학과 홍석률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관(National Archive)에서 확보해 최근 번역한 A4 용지 2장 분량의 문서에서 4 · 19혁명 다음 날인 1960년 4월 20일 오후 이 참모총장과 미국 해군 무관의 면담 내용을 공개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이 참모총장은 19일 낮 경무대로 가 김정렬 당시 국방부 장관 등 내각 요인들의 계엄령 선포 논의를 지켜봤다.
이 참모총장은 미 해군 무관에게 “송요찬 장군은 시민들과 가깝고, 민주당에 동정적이기 때문에 (계엄군인) 15사단이 도착하면 송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내용이다.
송장군은 5 · 16군사정변 뒤 미국에서 수학 중 귀국, 61년 국방장관 겸 최고회의 기획위원장,이어 내각수반 겸 외무부장관, 62년 내각수반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냈다.
같은 해 내각수반직을 사퇴하고, 63년 박정희의 대통령 출마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그해 대통령 선거에 자유민주당 후보로 옥중 출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다시 친정부 노선으로 전향, 1970년 인천 제철 사장에 취임하고, 전두환 정권 초입인 1980년 국정자문위원이 되었으나 그해 10월 62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한민군의 참군인 정신의 본보기를 보여준 송요찬 장군, 그 장군의 아들이 다시 피부과 전문의사로 세상에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세상을 참답게 이끌고 있지 않냐는 소박한 생각을 하게 한 깊이 있는 바비큐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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